[이 아침에] 고향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세월을 살면서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내가 착각에 빠져 산 것은 고향에 대한 착각이었다. 나는 평북 신의주에서 출생했고 여섯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심야에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며 38선을 넘어 이남으로 월남한 실향민이다. 서울에서 6·25전쟁을 겪은 후, 우리 가족은 영등포구 신길동과 대방동 지역에서 살았고 나는 그 지역에서 성장하며 중·고·대학 등 모든 교육 과정을 마쳤다. 결혼한 후에도 그 동네에서 살다 50년 전 우리 가족은 미국에 이민을 왔다. 인간에게 고향이란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우는 그리움의 원천이 아닌가. 나는 내가 출생한 신의주를 향해서는 전혀 그리움이 없었기에 고향이란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단하고 힘든 이민생활, 타향살이에 이골이 나면서도 가끔 향수병에 걸릴 때는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동네, 나와 내 가족들의 과거와 추억이 있는 곳, 신길동,대방동 그 동네를 회상하며 돌아가고 싶었던 그리움을 품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문학 행사가 있어 한국을 방문했다. 행사가 끝난 후, 건강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한국으로 이주한 딸네 집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옛날을 찾아 고향 같은 동네를 찾아갔으나 내 딸들이 놀던 정든 그 동네는 그곳에 없었다. 내 옛집이나 내 이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옛 이웃들은 수소문을 해봐도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와 새로운 상점들, 거리에는 온통 낯선 사람들로 붐볐다. 사라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고향이라 여기며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마음의 고향은 나의 착각의 고향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해바라기 습성을 버렸다. 1년 7개월 만에 내 집으로 돌아오니 익숙한 것에 편안함,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토런스 지역에 산 지도 어언 40년 세월이 넘었으니 모든 면에 익숙하고 정겨운 것이다. 타인종 이웃들도 나를 보자 놀라며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면서 네가 보고 싶었다며 두 팔로 나를 포옹해 주었고 너를 많이 걱정했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단골로 다니던 한인 업소들을 찾았더니 그들은 마치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온 듯 나를 반겼다. 그동안 통 뵐 수가 없어 혹시나 병원에 입원해 계신 것이 아닌가 걱정이 돼서 우리 집으로 여러 번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는 이가 없었다는 따뜻한 말들도 했다. 음식도 주고 선물도 챙겨 손에 쥐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가슴에 뜨겁게 전해지는 뭉클한 고마움이 내 전신을 감싸며 감동이 아침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서로 인정을 나누며 외로운 이민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그들이 내 이웃이다. 내 이웃들이 사는 토런스가 나의 정신적인 고향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고향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갈매기가 춤추는 레돈도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토런스가 내 고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고향 토런스 지역 이민생활 타향살이 타인종 이웃들